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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fingeren

[그림일기] 110825 공연 - 원석ver

 

그림: Gina

 

# 문이 열리면, 원석 문 프레임 중앙에 앉아있다.

# 그림이 죄측 흰 벽면에 쏘아져 있다. ( 비오는 날 기린 그림 )

# 멘트 (충분히 하시고 읽기 시작하시면 됩니다):  인사 / 전시 소개 / 이야기 (일기)에 대한 소개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림은 다 보셨나요 제 옆에 있는 그림이 보이시죠?

저 아이와 기린. 비가 오고, 아이는 우산을 쓰고 있네요.

아주 단순한 질문 하나 할게요. 둘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싫어하는 것 같아요?

(관객과 이야기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그림에 대한 자신의 감상도 이야기하고)

 

저는 우산을 쓴 아이가 기린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반대로 저 기린은 아이에게 무슨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게 궁금했습니다. 기린과 아이의 속마음.

그리고 이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오늘 제가 이 방에서 읽어드릴 이야기는 일기입니다.

때문에 제 실제 이야기인지 아님 누구의 이야기인지 궁금해 하실 텐데요.

그것 보다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아픔.

그 아픔이 위로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마지막 그림일기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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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녀가 찾아왔다.

우리는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깊지도 얕지도 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입으로 하는 말보다 눈으로, 숨으로 하는 말이 더 잘 들렸다.

그녀의 눈에 담긴 꿈도, 환하게 반짝이던 웃음도

서로의 아픔을 보아주던 그 다정한 말투도 그대로였다.

우리는 그렇게, 일년 전 어느날, 함께 끼들거리고 뒹굴거리던 나른한오후로 돌아가 있었다.

 

내 잘못이다. 내가 나쁘다.

 

음악1 - 머리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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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두개인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마음에서 두 심장은 늘 싸우고 있었다.

소년의 왼쪽 심장의 여리고 순수했다. 그리고 소년의 오른쪽 심장은 당당하고 야심찼다.

오른쪽 심장의 불같음을 왼쪽 심장으로 다독여 주고,

왼쪽 심장의 여리고 순수함은 오른쪽 심장이 지켜주며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소년은 좋아함에 참 서툴렀다. 아니 표현에 서툴다는 말이 더 맞겠다.

사람들과 같이 운동경기를 응원하다가도 싸움에 휘말리기 일쑤 였다. 소년은 경기장에 닿을 때까지 큰소리로 응원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멀리서 들리는 소리 지만 응원하나~” 소년의 오른쪽 심장은 화가 났다. “?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소년의 왼쪽 심장은 오른쪽 심장 뒤에 숨어 있었다.

물론 소년의 오른쪽 심장이 왼쪽 심장에 숨은 적도 있다.

소년의 첫사랑이 피어나기 시작 했을 즈음, 소년은 첫눈에 반한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말 한마디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순수하고 여린 소년의 왼쪽 심장에게 오른쪽 심장은 이렇게 말했다. “어짜피 되지 않았을 거야.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도 아니잖아.”

 

소년에게 두 번째 사랑이 찾아왔다.

두 번째 그녀와는 터질 듯한 왼쪽 심장을 다독이며, 손을 잡는데 성공했다.

한참이 지나서 그녀는 그날, 네 손마디가 정말 딱딱했어. 네가 깍지를 끼는데 손가락이 아파서 피가 안 통하는 것 같더라고. 그런데 되게 신기한 게 곧 익숙해져야지..”라고 생각했다? 우린 운명인가봐.” 그렇게 소년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소년의 왼쪽 심장은 그녀를 정말 좋아했다. 착하고 예쁘고 순수했다. 하지만 오른쪽 심장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소년이 좀 더 멋진 여자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커졌다.

 

================================================================================================- 여기까지 읽고 잠깐 쉬어 갈게요.

-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어요.

(우리 마음이 두 개일때 많잖아요. 좋으면서도 걱정되고 그러는 마음들이 있죠.)

- 노래(연관되면 더 좋구요) 듣고 일기 이어가겠습니다.

 

♬ 음악2- 들었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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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참 후 청년이 된 두심장의 소년은 세 번째 그녀를 만났다.

왼쪽 심장은 아직 두번째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었지만, 오른쪽 심장은 새로운 사랑의 그녀를 놓칠 수 없었다. 현명하고 멋진 그녀를 만나면 소년은 한뼘 쯤 자랄 수도 있을것 같았다

소년의 오른쪽 심장은 그녀와 마음이 통하고 있었지만, 왼쪽심장은 예전 그녀를 마음에서 밀어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두 심장은 서로를 모른척했다. 그래서 소년의 마음도 수시로 변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지면, 아직 남은 두 번째 사랑이 떠올랐다.

또 그녀와 헤어져야겠다는 마음을 먹기엔,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소년은 억울했다. 그리고 또 금새 비겁한 자신이 싫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그녀가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의 새날이 되고 싶어. 네가 새날을 살았으면 좋겠어.”

그렇게 멋지고 당당하던 그녀가 여린 풀꽃처럼 눈물을 흘렸다.

 

소년의 두 심장은 미안하다가도, 화가 났다. 그리고 화를 내고 나면 다시 미안해졌다.

소년은 결국 그녀에게도 그만 만나자고 말했다.

그녀는 알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 네가 나쁜 것이 아니야. 네 탓도 아니야. 우리는 즐겁고 행복했어.

가슴에 꽃잎이 떨어지고, 가시가 자라버린 걸 어떻게 하겠어.

그 가시를 뚫고 다시 꽃잎이 피어날 날이 있을거야.

그때까지 잘 지내. 넌 내게 참 멋진 소년이었어.”

 

소년은 눈물이 났다.

내 두 심장을 그녀가 알고 있었구나...

그것을 눈치 채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즐겁고 행복했구나... 그럴 수 있었구나...

그리고 지금 또... 이런 나를 걱정하고 있구나...

 

그녀가 찾아왔다.

우리는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깊지도 얕지도 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입으로 하는 말보다 눈으로, 숨으로 하는 말이 더 잘 들렸다.

그녀의 눈에 담긴 꿈도, 환하게 반짝이던 웃음도

서로의 아픔을 보아주던 그 다정한 말투도 그대로였다.

 

그녀가 내일 결혼한다는 것만 빼고는...

 

그때, 넌 좋지만... 쓸쓸했겠구나.

난 두렵지만... 그렇게 네가 좋았어. 못난 나는 그렇게 네가 좋았었어.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마음이 부족했던 게 아닌 것 같아. 네가 덜 좋았던 게 아니야.

그냥 못난 내 두 심장이 미안해.

네가 아플 걸 알면서도, 모른 척 눈 감았던 것 미안해.

이렇게 끝까지 네게 소리내어 말하지 못해 미안해. 안녕.

 

음악3 - 웃으며 안녕 / 쉘위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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