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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fingeren

[그림일기] 110817 공연 - 혜리 ver

 

그림: Gina

 

# 문이 열리면, 혜리 문 프레임 중앙에 앉아있다. 

# 그림이 흰 벽면에 쏘아진다. (나무에 피리부는)

# 아일랜드 휘슬 연주곡 1 시작

- 연주 마무리 후에 멘트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림은 다 보셨나요? 어떠셨나요? (관객과 잠깐의 대화)

 

오늘 저는 이 방에서 제 일기 한편을 읽어 드리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 아니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날의 일기인데요.

울지마라는 말을 들으니, 문득 그날이 떠오르더라구요.

 

제 실제 이야기인지 아님 누구의 이야기인지 궁금해 하지 마시구요.

그저 이 이야기를 듣고, 여러분과 제가 잠시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첫 번째 그림일기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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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돌이켜 보면, 그날은 참 이상했다.

 

왜 그렇게 분주한 마음이었는지,

왜 그렇게 안달스런 마음이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분주했는데, 왜 그렇게 쓸쓸했는지...

 

이제는 그것이 큰 이별의 복선이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날 나의 마음구멍에는 이런 말이 채워져야 했었다.

 

나쁜 것은 외로움이야. 그것 뿐이야. 넌 아니야.

 

(한텀 쉬고) “울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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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소리) 띠리링~ 몇 일 만에 그에게 연락이 왔다.

() 너 우리 엄마 만났니?”

 

그 답다. ... 그 답다.

B넌 결혼하기에는 참 좋은 여자야라는 말을 칭찬인 줄 알고 하는 남자였다.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삼년이 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제 그의 어머니를 만나는 순간, ‘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를 인정해야 했다.

B자신의 게으름을 위해 엄마가 필요했고, 말만 번드르르한 허풍도 전부다 믿어주는 바보 천치 여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어제 만난 그의 어머니는 마흔 즈음에 낳은 늦둥이 막내아들을 걱정하며, 내가 당신역할을 잘~ 해 줄 수 있는 여자라고 생각하시는 눈치였다.

 

(문자소리) 띠리링~

() 나 이제 일어났어. 저녁에 잠깐 봐."

오늘 바빠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 "밤에 집에는 올 거 아니야. 우리 꼭 봐야해. 공연 얘기도 해야잖아.”

 

그런 어머니의 늦둥이 아들은, 지금 내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나는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고, 나갈 준비를 마무리했다.

아직 내 침대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C를 바라봤다. 어제 밤 보일러가 고장 났다며 하룻밤만 재워달라는 그 녀석을 뿌리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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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길 위에 섰다. 볕에 눈이 뜨거워졌다.

A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보다 그녀가 더 좋은 것 같아. 미안해.” 얼마 전에 그가 말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지만, 오늘 꼭 그를 만나야 한다. 해가 뉘엿거릴 때, 결국 A와 나는 호프집에서 마주 앉았다.

 

몇 일 고민 해봤어. 난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아.

그리고 너도 그런 것 같아. 아니 그렇다고 믿어.

우리 마음이, 아니 네 마음이 남은 만큼만 다시 만나자.

다시 니가 같은 말을 하면, 그때는 두 번 말하지는 않을게.”

 

그가 옅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울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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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오는 길이 한 천리쯤 되는 것 같다.

한 발짝을 뗄 때마다, 마음구멍에서 한숨이 새고, 몸 안에서 자존심이 날아갔다.

목구멍으로 튀어 나오려는 울화덩이를 꿀꺽 삼킨다.

그래. 내가 더 나쁜 년이지.

 

짚 압에는 B의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 진짜 늦었네. 나 배고파. 집에 들어가서 야식 시켜먹자.”

 

그의 목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공기 중에 흩어져 버렸다.

나는 그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는 쉬지 않고 중얼거리며 내 방문을 열었다.

불을 켜자, 텁텁한 공기가 한숨에 마음구멍으로 들어온다.

공기에서 몇시간 전까지 이 자리에 있던 C가 느껴진다. 피식 웃음이 난다.

 

야식을 먹으며 그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무슨 얘기였지...?

사실 그때 난 눈으로 C녀석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일어나서 책 구경도 하고, 내 사진도 봤네. . 녀석! 참 조심성도 없어.”

 

B는 어떤 것도 직접적으로 묻지 못했다.

그래서 난 아무 대답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건, 참 편했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나보다. 알아서 해주지 않는 내가 낯설었는지, 불편했는지, 아니 정확히는 짜쯩이 났겠지... 그는 가봐야겠다고 했다.

나는 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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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또 혼자 남았다.

코끝에 거슬리는 B의 야식 냄새를 빼고, 침대에 누우니 아직 C의 냄새 남아 있다.

 

(문자소리) 띠리링~ A의 문자다.

! 울고 있는 거 다 알아. 내가 나쁜 놈이야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난 폰을 열어 C에게 문자를 먼저 보냈다.

베게에서 니 냄새 난다... ^^(웃음표시)”

() ? 나 머리 감았는데... -_-;(땀표시)”

녀석 답다. 또 내가 자신을 지적한다며 발끈 한 표정이 그려진다.

아니.. 그게 아니라...”라고 문자를 쓰다가, 그냥 휴대폰을 덮었다.

 

음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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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 반.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지의 전화였다.

“30분 내로 너희 집 앞에 도착할거야. 얼른 준비하고 있어.”

 

모자를 눌러썼다. 맞다... 가릴 볕이 없는 한밤중이지.

길 위에 서니, 칼바람이 눈을 베고 지나갔다. 눈이 시렸다.

 

차를 타고, A의 문자를 봤다. 답장 버튼을 눌렀다.

자기가 울지 말라고 해서 안 울어.

지금 엄마 병원에 가는 길이야. 엄마가 돌아가셨데.

오늘 자기를 잡은 이유가 이건 가봐. 자기야... 나 조금 무서운 것 같아.”

이렇게 문자를 쓰다가... 휴대폰을 덮었다.

 

창밖이 아득했다. 창을 넘지는 못하는 바람이 길 위에서 으르릉 거렸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은 바람에 더럭 겁이 났다.

 

서울에서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아득했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벌써 해가 뜨나... 아니 눈발이다. 검은 풍경에 눈발이 찍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때 난 알았다.

참 많은 거리가 겨울이구나. 누구도 없는... 아니, 있을 수 없는 겨울이구나.

나 혼자 덩그러니, 그저 맨몸으로 겨울을 녹여 내야만 했던 그 밤에

누구도 아닌, 내가 나에게 해줘야 했던 말이 있다.

 

나쁜 것은 외로움이다. 그것 뿐이다. 넌 아니다.

(한텀 쉬고) “울지마

 

음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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