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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fingeren

[그림일기] 110821 공연 - 백찬 ver

 

# 문이 열리면, 종현 문 프레임 중앙에 앉아있다.

# 그림이 죄측 흰 벽면에 쏘아져 있다. (나무에서 나뭇잎 날아가며 새 되는 그림)

# 멘트 (충분히 하시고 읽기 시작하시면 됩니다)

- 인사 / 전시 소개 잠깐

- 이야기 (일기)에 대한 소개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림은 다 보셨나요? 어떠셨나요?

 

지금 제 옆에 있는 그림 보이시죠?

한 소녀가 나무에 물을 주고 있는데요.

물을 주었더니 나뭇잎이 물고기가 되고 새가 되어 날아가는 그림인데요.

방 안에 메인으로 모빌과 걸려 있는 그림의 원스케치거든요.

여러분은 이 그림 어떠세요? (개인 감상 잠깐하고)

 

제가 오늘 이방에서 읽어드릴 일기는

이 그림을 보고 떠오른 한 아이와의 추억이야기입니다.

제 실제 이야기인지 아님 누구의 이야기인지 궁금해 하지 마시구요.

그저 이 이야기를 듣고, 여러분과 제가 잠시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첫 곡 듣고 그림일기 시작하겠습니다.

 

음악1 - 오디너리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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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어릴 적 나는 못하는 것이 없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다.

내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그래서 인기도 좀 있었다.

 

그런 내가 껌뻑 죽는 귀여운 아이가 있었다.

지켜주고 싶은 아이... 대신 죽을 수 있는 아이...까지는 아니어도,

난 말하지 않아도, 그 아이의 마음이 들을 수 있는 세상 유일한 사람이었다.

 

한번은 내 딱지상자를 그 아이가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내가 몇 달간 동네 아이들의 것을 모조리 다 따 놓은 딱지였다. 나는 그 아이의 마음을 들었다.

너도 한번 해볼래?” 나는 쭈볏 거리는 그 아이를 데리고 딱지놀이를 시작했다.

지인~짜 못한다. .. 어쩜 이리 게임을 못할까.

지고 이기고를 적당히 맞춰가며, 놀아주었는데 그 아이가 말했다.

() 나 이 정도면 좀 잘하지 않아? 나도 동네 아이들 하는데 가서 해보고 싶어.”

나는 머뭇거렸다. ‘잃어봐야 얼마나 잃겠어하며 소녀와 함께 동네 아이들에게 갔다.

대박~ ! 두 시간 만에 한 장도 남김없이 내 딱지를 다 잃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화 한 톨 내지 않았다.

까짓, 뭐 대수라고. 재밌게 놀았잖아. 다시 또 따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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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마 겨울에 들어설 무렵이었던 것 같다.

몇 일 동안 그 아이는 침울한 기색이 역력했다. 난 또 딱지를 내밀었다.

이거 또 할래?” 그 아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무리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한참을 어르고 달래서야

() 저번에 진짜 재밌다 한 거 있잖아. 나도 그거 타보고 싶은데...”

라고 말했다.

썰매였다. 내가 학교에서 눈썰매장에 다녀온 것이 부러웠던 것이다.

별로 재미없었어. 진짜야. 얼마나 높은지... 얼마나 빠른지...

오빠도 무서워서 몇 번 안탔어. 넌 아마 무서워서 내려오지도 못 할걸? 우리 딴 거하자.”

사실! ~게 재밌었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는 그렇게 말했다.

그 아이는 그 한마디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를 줄 몰랐다.

나는 엄마도 아빠도 그 아이를 데리고 썰매장에 가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그 아이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그날부터 나는 그 아이와 놀지 못했다.

그 아이는 절대로 나에게 놀아달라고 조르지는 않는 아이였다.

그리고 나는 뒷산에 혼자 오르내렸다.

나무가 가장 적은 곳을 찾고, 산책로를 중심으로 위능선과 아래능선을 활용하기로 했다. 친구들의 도움 없이 혼자 해야만 했다. 그렇게 몇일, 아니 몇 주간 동안 나는 혼자 뒷산을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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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어 눈이 왔다.

난 그 아이를 를 데리고 뒷산에 갔다.

몇일 간을 혼자 고생해 만든 우리만의 썰매장이 보였다.

() 우와~~~ 역시 오빠가 최고야! 못하는게 하나도 없는 맥가이버!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짱이야!“

그 아이는 입이 벌어져 다 물줄을 몰랐다. 내리는 눈보다 눈부신 그 아이의 함박웃음을 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하루종일, 아니 그 겨울 내내 함께 썰매를 타고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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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서 잠깐 쉬어 갈게요

(자연스러운 멘트로 관객과 이야기 잠깐한 후에 음악으로 연결)

 

음악2 - 아날로그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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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서, 그녀와 나는 또다시 산에 올랐다.

그때보다 훨씬 커진 우리에게 훨씬 많은 눈이 내렸다.

영화에서처럼, 아니 공연에 뿌리는 특수효과처럼 나리던 날이었다.

우리는 이제 엄마가 없는 남매가 되었다.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지 않은 지친 그 아이의 얼굴을 보며, 예전의 그 함박웃음을 그려 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세상 최고 멋진 오빠가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내 삶도 가누질 못하는, 아니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조차 잃어버린 멍충이 찌질이가 되어 있다.

() 오빠... 울지마...”

그 아이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못한 내 맘을 그 아이가 들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따뜻했다. 하지만 그날이 전부였다. 그 아이의 따뜻함은 그게 다였다.

 

나는... 나는 무엇을 하고 있지...

어떻게 살래? 무엇을 하며 살래? 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왜 사니? 조차 모르겠는데, 네 질문은 너무 어려워.”라고 말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나에게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다는 억울함을 떨칠 수가 없다.

나는 지금... 모르는 동네에서 길을 잃어버린 아이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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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그 아이는 자조 섞인 말을 내게 던졌다.

() 우리는 모두, 가끔은 말도 안 되는 일을 하잖아. 산다는 일.”

확실히 그 아이는 강해졌다. 바닥으로 떨어 졌을 때, 극단적인 코너에 몰렸을 때,

그 아이는 있는 힘껏 발버둥을 치고 험한 물살을 가르며 물위로 올라왔다.

 

나는 그 아이가 한말을 입으로 반복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가끔... 말도 안되는 일을... 한다... 산다는 일...”

포기일까? 무시일까? 아니면... 위로일까?

 

그 아이는 나에게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방식으로 울지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는 내가 말하지 않은 내 마음을 듣고 있는 아이니까. 아직 내편이니까.

난 그렇게 믿고 있다. 그렇지?

 

음악3 - 그대는 정말 대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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